Exploring the biblical theology of Christian egalitar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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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역의 신학: 고린도전서 14:34~35

이글은 제가 2월 11일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열린 태평양 여성 침례교에서 발표한 말씀의 첫 번째 부분입니다. ‘한계는 없다: 신학을 통해 여성에게 부여된 권한’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회의 연설은 여기 오디오 파일(영어)로 게시되어있습니다. 제 강연은 두 번째 세션의 13분 45초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고린도전서14장의 핵심단어는 한국어 발음과 함께 헬라어로 표기하였습니다.


서론

저는 바울의 편지를 매우 좋아합니다. 바울의 시선으로 예수님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구원과 구속에 관한 바울의 설명 방식도 좋아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환영받고 동등한 위치에 있는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인 교회를 향한 바울의 비전에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평등해야 합니다. 즉, 직업이나 인종, 가정환경이나 과거가 어떠하든 간에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형제자매로서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입니다. 여기서 저는 갈라디아서 3장에 있는 바울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을 아름답게 설명한 고린도 전서 12장을 예로 들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평등 또는 상호관계에 대한 사도의 메시지를 성도들이 더디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사역과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일반적인 견해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바울서신에는 특히 여성과 사역에 관련된 주제에 있어서 그의 일반적인 가르침을 무색하게 만드는 몇몇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구절들은 여러분의 관심사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강연에서 [블로그 기사 시리즈로 게시될 예정]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로 시작됨)에 초점을 맞추고 디모데전서 2:12(“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라”로 시작됨)을 살펴보며 교회 감독자의 자격 목록이 있는 디모데전서 3장도 조금 볼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이 세 구절은, 특히 이 세 구절에 대한 그들의 해석은 바울의 다른 사역에서 한 말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이 세 구절은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나 적합성에 상관없이 특정 사역에서 여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고린도전서 14:34~35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을 보기 전에 고린도전서 1장부터 보겠습니다.

이 편지는 누구에게 보내는 것일까요? 기본적인 질문인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1장 2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다고 말합니다. [1] 성경을 문자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면 2절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편지는 우리에게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이 서신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영감받아 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우리는 이 편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고 또 얻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말 그대로 오늘날에 속한 우리에게나 지금의 교회에 쓰인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바울은 1세기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럼 이 편지가 왜 쓰였을까요? 고린도전서 1장 11절에서 알 수 있듯이 바울은 글로에라는 여자와 관련된 사람들로부터 어떤 보고를 받고 이 편지를 썼습니다.

1세기에 편지를 쓰는 것은 큰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은 비용을 감당할 만한 강한 동기가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글로에의 집안사람들로부터 고린도의 심각한 문제들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고 우리가 고린도전서로 알고 있는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아마 글로에가 직접 쓴 편지이거나 글로에 집안에서 구두로 전달받은 내용일 수 있습니다. 때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그가 받은 보고 내용을 인용하듯 기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이 편지가 누구에게, 왜 쓰였는지를 생각하면서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 [또는 관습]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2]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전 14:34-35).

이 구절을 읽는 데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지만 그중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보간 이론

34~35절이 이후 무명의 사람에 의해 본문에 추가 삽입된 것으로 여기는 이론.

몇몇 사람들은 34~35절이 이후 무명의 어떤 사람에 의해 바울서신에 추가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의 오래된 사본을 보면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4~35절은 어떤 사본에서는 33절 이후가 아닌 14장 마지막에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사본에서는 이 구절에 쟁점과 혼동이 있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기호들이 난외주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전서의 초기 사본에서 난외주로 추측되는 34~35절이 이후 고린도전서의 다른 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기관에 의해 본문에 추가되었다고 추정합니다.

또한, 성경에서 34~35절을 가리고 완전히 빼고 읽어도 전체 내용의 흐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두 구절이 없이도 전체 문단의 내용은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며 이 문단의 주제인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예언 사역에 관한 내용은 끊김 없이 이어집니다.

보간 이론은 제가 염두에 두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가능성이 있으며 성경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본문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34~35절이 완전히 생략된 고대 사본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저는 이 이론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인용-반박 이론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말을 인용하고 36~38절에서 그들의 말을 반박한 것으로 여기는 이론.

이 구절에 대한 또 다른 접근 방식은 34~35절이 바울의 견해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의견을 기록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바울은 34~35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말을 인용한 다음에 36~38절에서 그들을 책망합니다. 이것을 인용-반박 이론이라고 합니다.

이 이론의 중요한 부분은 고린도전서 14장 36절의 첫 말씀입니다. 흠정역(King James Version)과 개정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은 36절의 시작을 “뭐!(what!)” 라고 번역한 몇 안 되는 버전입니다.

35 …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니라.
36 뭐? (η: 헤)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서 났느냐? 또는 (η: 헤) 당신에게만 내렸느냐?
37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또는 (η: 헤)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이 주의 계명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무지한 사람은 무지하게 두어라.

흠정역(King James Version)으로 위의 구절에서 몇 가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 한 글자로 된 헬라어(η: 헤) 는 때때로 “뭐! (what!)”(반감을 나타내는 표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또는(or)”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는 “또는(or)”이라는 단어가 36절에 두 번, 37절에 한 번 나옵니다. 몇몇 영어 번역본은 36절 시작 부분에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은 채로 그냥 둡니다.

~ 36절에 있는 “~만(only)”에 대한 헬라어 단어(일부 번역에는 “너희들에게서만(only ones)”으로 번역됨)가 문법적으로 남성형을 나타내므로 36~38절의 질책은 교회에서 수치스러운 말을 하는 고린도 여인들을 향한 구절은 아닙니다. 따라서 바울이 책망하고 있는 36~38절은 남자들에게만 해당할 수도 있고, 제멋대로 예언하는 남자나 여자에게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 36절과 37절에 나오는 “어떤 남자(any man)”를 의미하는 헬라어(τις: 티스)는 “누구나(any one)”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 흠정역에는 남성 대명사가 있지만, 이 구절들의 헬라어에는 남성 인칭 대명사가 없을 뿐 아니라 고린도전서 14:36~38의 헬라어 원문에는 대명사가 전혀 없습니다.[3]

제가 흠정역을 좋아하지만 이 버전에는 헬라어 원문을 그대로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man(남자)” 및 “him(그)”과 같은 남성형 단어가 자주 사용됩니다. 이 부분은 후에 3부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인용 반박 이론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장은 고린도 교회에 경쟁을 일으키는 파벌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파벌 중 하나가 교회 모임에서 여성이 말하지 못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글로에와 같은 여성들에게는 진정한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34~35절에서 이 분파를 인용한 다음 36~38절에서 그들을 책망한 것으로 인용-반박 이론은 설명합니다.

다양한 접근법이 생긴 이유

그렇다면 왜 이런 이론들이 제기되었을까요? 제가 34~35절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이 고린도 여성들에게 교회 모임에서 조용히 있으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단순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이러한 이론을 가지게 된 것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여성들이 교회 모임에서 말하고 기도하고 예언도 했으며 바울이 그 여성들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성 사역자들이 단정한 머리 모양이나 어쩌면 머리에 쓸 적절한 것을 원했지만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멈추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인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교회 밖에서 덜 귀히 여겨지는 지체들의 다양한 사역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덜 귀히 여김 받는 지체들 일부에는 여성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난 바울의 논증은 사회적 지위나 인종, 성별 또는 교회 밖 사회에서 받는 인식과 전혀 관계없이 성령은 각 사람에게 사역을 위한 성령의 은사를 준다는 것입니다(예: 고전 12:7, 11).

바울은 11장에서 여성들이 말로 하는 사역을 인정하였고, 12장에서도 모든 교인에게 모든 종류의 사역을 하도록 권면합니다. 그런데 14장에서 갑자기 바울이 모든 여성에게 말하는 것을 금했을까요? 바울이 자기모순에 빠진 건가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통상적인 바울의 가르침에서 그는 모두가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환영했으며 남성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나의 접근법

14장 26~40절에서 바울은 제멋대로 말하는 세 무리에게 침묵하라고 하지만 동시에 질서 있게 말하도록 격려함.

보간 이론이나 인용-반박 이론 둘 다 제가 선호하는 접근법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34절과 35절을 바울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기록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제 접근법의 핵심은 26절에서 시작하여 14장 마지막 40절까지의 구절을 좀 더 확대하여 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교회 모임에서의 질서와 예의를 지키는 것에 관한 것이며,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사람, 예언하는 사람, 여자들, 이 세 그룹이 무질서하게 하는 말을 잠잠하게 합니다. “잠잠하라(be silent)”에 해당하는 동일한 명령형 헬라어 동사가 이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각각 사용되었습니다.

~ 방언을 말하는 자는(남자나 여자나) 통역할 사람이 없으면 잠잠하고(σιγάω: 씨가오) 방언 말하기를 그쳐야 합니다(고전 14:28).

~ 선지자는(남자나 여자나) 다른 사람이 계시를 받으면 잠잠하고(σιγάω: 씨가오) 예언을 그쳐야 합니다(고전 14:30). 우리는 고린도의 교인들이 서로 예언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앞으로 나아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끼어들며 말했습니다.

~여자들은 잠잠하고(σιγάω: 씨가오). 바울은 여기에서 그가 제지한 말들이 어떤 것인지를 나타냅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가며 여성들이 무엇을 배우고(μανθάνω: 만다노) 싶은 것이 있다면 질문은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고전 14:34~35). 여기에서 키워드는 “배우다”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여인들은 아마도 교회 안에 지장을 주는 질문이나 예언하는 남자와 여자를 향해 질문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언이 모두가 배우고(μανθάνω: 만다노) 권면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바로 앞 절에서 말하였습니다(고전 14:31). “배우다(learn)” (μανθάνω: 만다노)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가 31절과 35절에 동일하게 사용되었는데 그 여인들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질문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무질서한 예언 사역에 관한 내용의 연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 예언하는 자들, 질문을 던지는 아내들 이 모든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린도전서 14장이 그들을 완전히 침묵시키려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6~40절은 고린도 교회의 부적절하고 무질서한 발언이 쟁점이었음을 보여주는 구절로 끝을 맺으며 이 구절의 처음과 끝에서 바울은 덕을 세우는 말과 은사 받은 대로 하는 말을 격려하고, 성별과 관계없이 교회 모임에 질서 있게 참여하도록 권면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6절과 39~40절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성경에 형제가 아닌 “형제자매”로 번역된 번역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예언하기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막지 마십시오. 모든 일을 적절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39~40 (새번역)

바울의 목적은 단순히 사람들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취지는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 말을 하며 질서 있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구절에서 바울이 여자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조용하게 하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바울의 참된 의도를 놓친 것입니다.

바울의 목적은 은사 받은 행실 좋은 여성들을 침묵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일으키는 말들을 다루는 동시에 덕을 세우는 사역을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권면할 때 특정한 성별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을 읽는 방식이지만, 이 구절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해 드렸습니다.

2부에서는 디모데전서 2장 12절을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1] 고린도전서 1장 2절의 일부 영어 번역본에서 바울이 더 많은 청중에게 편지를 쓴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를 위해 쓰였고 고린도 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각처에서”(관용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라는 부르심이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2] “복종하다(ὑποτάσσω: 후포타소)”에 해당하는 같은 헬라어 동사가 고린도전서 14:32에서 선지자들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32절의 “복종”은 33절의 “무질서한 소란(ἀκαταστασία: 아카타스타씨아)”를 의미하는 명사와 대조됩니다. 32절과 34절에 나오는 “복종”의 의미는 선지자들과 여인들이 소란을 일으키거나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않도록 그들의 말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복종”에 대한 모든 기사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통상적으로 헬라어에서 남성 또는 남성을 포함하는 집단은 문법에서 남성형 단어로 표현됩니다. (문법적으로 남성이거나 여성일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는 남성형 단어로 표기됨). 그러나 여성 또는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면 문법적으로 여성형 단어로 표현됩니다.

2023년 2월 13일 Margaret Mowczko (마가렛 모우츠코)

바울 사역의 신학: 디모데전서 2:12
바울 사역의 신학: 디모데전서 3장 2절과 브리스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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