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ing the biblical theology of Christian egalitar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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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역의 신학: 디모데전서 3장 2절과 브리스길라

이 포스팅은 태평양 여성 침례교 회의에서 제가 나누었던 말씀의 세 번째 부분이자 마지막입니다.

1부의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에 대한 서론과 토론내용이 여기 있습니다.
2부의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 대한 토론 내용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회의 연설의 오디오 파일(영어)을 여기에 게시하였습니다. 제 강연은 두 번째 세션의 13분 45초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제가 여성 목회에 대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과 디모데전서 2장 12절의 구절은 대화 가운데 계속 언급된 구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디모데전서 3장 1~7절에서 감독의 자격을 제기하고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 2절을 인용하여 그들은 여성은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면, 그는 [1]훌륭한 일을 바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며…” 디모데전서 3장:1b-2a (새번역)

많은 사람들이 2절에 나오는 “한 아내의 남편” 이라는 구절에 꽃혀있으며 여성은 남편이 될 수 없으므로 따라서 여자는 회중의 감독이나 관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더글라스 무(Douglas Moo)나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Schreiner) [2] 같은 존경받는 보완주의 신약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이러한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지도자들은 미혼이거나 독신이었으므로 지도자가 남편인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구절은 잘 이해되지 않는 관용구입니다.[3] 그러나 초대교회가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면 일부일처제 그 이상을 의미했습니다. 이 관용구의 한가지 의미는 결혼한 사람이 배우가자 사망하였을 경우 재혼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4] New Revised Standard Version(새개정표준역)은 디모데전서 3장2절, 12절, 5장 9절, 디도서 1장 6절의 번역에서 “한 번만 결혼”한 것으로 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1세기에 배우자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세계에서는 라틴어로 univira라고 불리는 덕목이 있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한 남편”입니다. 우리는 고결한 아내들을 기념하는 고대 묘비에 새겨진 univira라는 단어를 볼 수 있습니다. Univira는 결혼을 한 번밖에 하지 않고 사망한 여성들과 첫 번째 남편이 죽은 후에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한 과부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5] 이 덕목에는 여성이 자신의 열정을 억제하고 순결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글을 쓴 바울은 이 덕목을 남성과 여성 사역자들에게 적용했습니다. 그는 이 남성과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충동을 억제하고 통제하기를 원했습니다.[6]

남성적 언어가 반드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관용어는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서 다른 네 그룹의 사람들에게 적용되지만, 각각의 상황에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이 관용어구를 표현하는 데 성별을 포괄하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2절(감독자들의 맥락에서), 디모데전서 3장 12절(집사들의 맥락에서),[7] 그리고 디도서 1장 6절(장로들의 맥락에서)에서 “한 아내의 남편(또는 남편들)”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때 디모데전서 5장 9절(교회의 명부에 등록된 과부들에 대한 맥락)에서 그는 이 관용구를 뒤집어 “한 남편의 아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들은 확실히 재혼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어의 남성적인 언어는 종종 여성을 포함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용되는 단어가 “남편/남자”와 “아내/여자”일 때 이러한 포괄성을 확인하기가 당연히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어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100년 전이나 심지어 70년 전의 조종사 매뉴얼이나 변호사들을 위해 쓰여진 책을 읽는다고 상상해 본다면 거기에는 포괄적인 언어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그 당시 거의 모든 조종사와 변호사들이 남성이었고, 둘째, 과거 영어의 관례는 “남자(man)”와 “남자들(men)”과 같은 단어를 상용하되 여성을 배제하지 않는 방식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도 이런 면에서 대략적으로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문학적 관례에 대한 어느 정도 유사한 이해를 가지고 디모데전서 3장 1~7절을 살펴볼 것을 제안합니다.

신약성경 시대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남성이었고, 2절을 포함해 디모데전서 3장 1절~7절의 자격 목록은 감독자는 대부분 남성이며, 기혼이거나 편부이며 자녀가 있고, 자신의 가정을 관리하고 돌봐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초기 수십 년간(약 40-80년경) 감독자들은 아마도 모든 종류의 모임과 활동을 위해 자신의 집에서 모이는 모임들을 주최하고 돌보는 비교적 부유한 세대주였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감독자가 남성이었을 때 “한 남편의 아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구절을 사용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관용구는 성별을 포함하는 버전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3장을 포함하여 헬라어 신약성경 어디에도 교회 지도자가 반드시 남성이어야 한다는 명시적인 문구는 없습니다. 한 예로, The New Living Translation(NLT) 번역에서는 “교회 지도자는 남자이어야 한다…”라고 번역하지만 이 말은 헬라어 원어에는 없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3장 1~7절의 영어 번역본에서 나오는 남성 대명사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에는 이 구절의 헬라어에 남성 인칭 대명사가 없으며, 헬라어로 “남자/남편”을 뜻하는 단어는 이 구절에서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관용어로 딱 한 번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감독자가 남성일지라도, 우리는 자신의 집에서 교회 모임을 주최하고 돌보는 몇몇 여성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루디아와 골로새서 4장 15절에 언급된 눔바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가 가장 뛰어난 예이므로, 곧 그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의 사역 용어

흥미롭게도 바울은 그의 사역 동역자 중 한 명도 결코 감독자(episkopos)로 지칭하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사역 동료들 중 누구도 장로나 목사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역자들에게 선호하는 호칭은 다음과 같습니다:

  • 동료,
  • 형제, 자매,
  • diakonos(“사역자, 집사”),
  • apostolos(“사도, 선교사”)
  • 그리고 그는 일꾼과 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들은 명성이나 권력을 내포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들은 동료애, 봉사, 노고를 내포합니다. 1세기에 사역자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 실라와 같은 남성들과 브리스길라, 에유오디아, 순두게, 압비아, 뵈뵈, 유니아, 버시와 같은 여성들에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역 용어들을 사용합니다.

여기에 바울이 선호하는 사역 용어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고린도, 에베소, 그리고 로마에서의 브리스길라

우리는 (이 시리즈에서) 고린도의 기독교인들과 에베소의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들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브리스길라와 그녀의 남편 아굴라는 이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져 있었고, 이들 부부는 에베소에서 자신들이 주최한 가정 교회와 나중에는 로마의 가정 교회의 지도자였던 것 같습니다.

브리스길라가 감독관이 될 수 있었을까요?

  •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가르칠 때 그의 신학을 바로잡은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그녀의 남편이었고, 아볼로는 그들의 교정을 받아들였습니다(행 18:24-26). 그 외에 누구도 (이 교정에)관련되어 있다고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방문교사의 교리를 교정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감독자나 장로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누가가 굳이 이 사건을 사도행전에 기록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바울이 에베소에서 쓴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첫 편지를 끝맺으면서 인사말을 전하지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만 언급합니다(고전 16:19~20). 분명 이 부부는 고린도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는데, 아마도 그들의 사역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쓸 때 그는 디모데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오네시보로 집안에 인사를 보냈습니다(디모데전서 1:2, 4:19). 에베소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인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네 사람이 에베소 교회의 주요 지도자들이였을까요?

그러나 로마서 16장은 특히 흥미롭습니다.

  • 바울이 로마의 교회 교인들에게 보내는 문안 인사에는 28명이 포함되어 있는데, 브리스길라가 가장 먼저 언급되어 있습니다(롬 16:3-5). 28명 중에 첫 번째입니다! 이것은 브리스길라가 로마 교회의 지도적인 인물이었음을 시사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에베소와 고린도, 로마에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브리스길라와 그녀의 남편이 이 교회들에서 주요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브리스길라의 성별과 몇몇의(극소수) 신약성경 구절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오는 편견 때문이라고 제안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 6~8절(새번역)에서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8]

바울의 전반적인 사역의 신학은 “당신에게는 은사가 있으며 그것을 주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세우는 데 사용하십시오”였습니다.

바울이 편지에서 여성에 대해 언급한 내용 중 그 어느 것도 문맥을 이해하면 경건하고 은사 있는 여성의 사역을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떤 진술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능력 있는 우리의 자매들을 제한하거나 낙담시키거나 상처 입히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여성 동료들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겼으며 브리스길라와 같은 여성들을 침묵시키거나 제한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있는 브리스길라들을 침묵시키거나 제한하지 맙시다.

각주

[1] 디모데전서 3:1에서 “감독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episkopos이다. 이 단어는 때때로 영어로 “주교(bishop)”로 번역됩니다. 케빈 매디건(Kevin Madigan)과 캐롤린 오시크(Carolyn Osiek)는 빌립보서 1:1에서 episkopos에 대해 언급하며 “epislopos는 오늘날 또는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이후에 가진 “주교”라는 단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관리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로 감독자 또는 관리자를 의미합니다.”  Madigan and Osiek (매디건과 오시크, 편집 및 번역), Ordained Women in the Early Church: A Documentary History (Baltimor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2005) p.11.

[2] 저는 더글러스 무(Douglas Moo)와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Schreiner)가 여성 장로에 대해 말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무(Moo)의 다음 주장에는 완전히 동의합니다.”… 이 문구가 분명히 여성을 배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지만, 바울이 이 문구를 쓸 때 그가 남성을 염두에 두었음을 시사합니다.”
더글러스 제이 무(Douglas J. Moo), ““The Interpretation of 1 Timothy 2:11–15: A Rejoinder,” Trinity Journal 2 NS (1981) p.198–222, 211. (본 논문의 PDF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Schreiner)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진술을 포함아여 디모데전서 3:1~7과 디도서 1:6~9의 장로의 요건 자체가 여성이 장로로 섬기는 것을 반드시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여기서 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어서 그는 “[여성은 장로로서 봉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부합한다”라고 말합니다.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Schreiner), “Philip Payne on Familiar Ground: A Review of Philip B. Payne, Man and Woman, One in Christ: An Exegetical and Theological Study of Paul’s Letters,” The Journal of Biblical Manhood and Womanhood 15.1 (Spring 2010): pp. 33–46, 35 (JBMW 15.1 PDF가 여기 있습니다.)

[3] 확고한 보완주의자인 안드레아스 J. 쾨스텐베르거(Andreas J. Köstenberger)도 디모데전서 3:2의 구절이 관용어임을 인정합니다. 그는 “한 아내의 남편은 부부의 신실함을 나타내는 관용어”라고 이해했습니다. Köstenberger, 1-2 디모데 및 디도서 주석 (Nashville, TN: B & H Publishing Group, 2017).

[4] 서기 200년경에 쓴 터툴리안(Tertullian)은 배우자를 잃은 기독교인들의 재혼을 반대하는 논증에서 한 아내의 남편(디모데전서 3:2)과 한 남편의 아내(디모데전서 5:9)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교회의 율법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재혼이 신앙에 얼마나 해를 끼치며 거룩함에 얼마나 큰 장애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결혼을 두 번 한 남자는 교회에서 지도할 수도 없고, 한 남편의 아내가 아니면 과부로 선택되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터툴리안(Tertullian), Ad Uxorem (“그의 아내에게”) 1.7.
인용된 출처: Tertullian, The Treatises on Marriage and Remarriage, translated & annotated by William P. Le Saint (Ancient Christian Writers, vol. 13; New York: Paulist Press, 1951) p. 20. (또 다른 영어 번역은 New Advent 웹사이트에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 교회의 여성 장로에 관한 이 글에서 univira(한 남편의 아내)를 사용한 카르타고의 풀젠티우스 페란두스의 캐논(the Canon of Fulgentius Ferrandus of Carthage, 547)의 인용문을 참조하십시오.

[5] Köstenberger는 “문자 그대로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요건은 로마의 유니비라(univira, 한 남편의 아내)와 닮아있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Köstenberger, Commentary on 1–2 Timothy and Titus.)
Majorie Lightman과 William Zeisel은 유니비라(univira)의 사용을 초기 로마 공화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그 당시에는 한 번 결혼한 로마의 정예 부인들에게만 사용되었으나, 초기 기독교 시기에는 초기 로마 공화국 시절부터 “금욕의 과부”를 의미했다고 추적했습니다(p. 27, Univira: An Example of Continuity and Change in Roman Society). 이들의 논문은 여기 JSTOR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Olankunbi O. Olasope는 자신의 논문인 Univira: The Ideal Roman Matrona에서 유니비라를 둘러싼 고대 증거에 대해 서술하였으며, 이는 여기 Academia.edu 웹사이트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6] 5세기에는 라틴어권 서구에서 교회 지도자들에게 독신 생활이 의무화되었습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 관행이 강제되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그는 독신주의는 자발적이어야 하며 감독자/주교들이 결혼해도 좋다고 믿었습니다) 루터는 디도서 해설서에서 “한 아내의 남편”에 대한 그의 논평에서 이 관용구가 “수 세기 동안의 관습과 수많은 성스러운 아버지들의 예에 뒷받침되었다”고 언급하면서 “아버지들은 어떤 법에 의해서도 강제 없이 자유롭게 독신 생활을 지키셨으며, 후에 그것이 법으로 제정되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마틴 루터, Commentary on Titus, Internet Archive pp. 18–19)

[7] 비잔티움 대주교이자 그리스어가 모국어였던 크리소스톰(407년 사망)은 디모데전서 3장 12절의 구절이 남녀 집사들에게 적용된다고 썼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여집사들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그들의 직분은 교회에서 필요하고 유용하며 존경받기 때문입니다.” (크리소스톰, 디모데전서에 대한 설교, 설교 11). (디모데전서 3:8-13에 집사에 관한 더 많은 정보는 여기에 있습니다.)

[8] 로마서 12장 6-8절은 요한복음 3장 16 절과 유사한 헬라적 문법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두 구절 모두 남자와 여자에게 적용됩니다.

2023년 2월 13일 Margaret Mowczko (마가렛 모우츠코)

바울 사역의 신학: 고린도전서 14:34~35
바울 사역의 신학: 디모데전서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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