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ing the biblical theology of Christian egalitar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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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사역 신학: 디모데전서 2:12

이 포스팅은 제가 2월 11일에 컨퍼런스에서 나누었던 내용 중 2부입니다. 서론을 포함하여 고린도전서 14:34~35 에 대한 토론인 1부 내용이 여기에 있습니다. 2부에서는 디모데전서 2장 12절을 즉각적인 상황에서 그리고 디모데전서의 맥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컨퍼런스의 음성 파일(영어)을 여기에 게시하였으며 제 강연은 두 번째 세션의 13분 45초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에 인용된 성경 구절은 헬라어 성경을 직접 번역하였으며 특정 핵심단어는 한국어 발음과 함께 헬라어로 표기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1~12절 말씀입니다.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 (ὑποτάσσω: 후포타소)하는[1]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αὐθεντεῖν: 오덴테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디모데에게 쓴 바울의 첫 편지

제가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 접근하는 방식은 1부에서 나눈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에서의 접근 방식과 유사합니다. 여기에서도 먼저 디모데전서의 수신자가 누구인지, 왜 이 편지를 쓰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는 1장 2절에서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바울의 대리인으로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이 편지를 쓴 이유는 바울이 하는 염려 통해 즉시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에베소교회에서 몇몇 사람들이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 교리 중 일부는 율법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대부분 바울서신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약의 첫 다섯 권을 언급했을 것입니다. 에베소의 몇몇 사람들은 율법을 가르치기는 하였으나 그릇되게 가르쳤습니다. 제가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이 잘못된 가르침이 창세기 2~3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디모데전서 2장 12절도 조금 확대하여 디모데전서 2장 8절부터 마지막 절인 15절까지를 전체 문단으로 보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8~15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바울은 이 구절에서 에베소 교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문제 행동을 지적하고 바로 잡고 있습니다.

8절에서 바울은 분노하며 다투는 남자들의 문제를 다루며, 9~10절에서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부유한 여성들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하나의 단위로 볼 수 있는 11~12절은[3] (자신이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 필요하고 한 남자를 지배해서는 안 되었던 한 여성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8~15절의 단수와 복수

바울은 8~10절에서는 “남자들” “여자들” 복수형을 사용하다가 11~12절에서 “한 남자” “한 여자” 단수형으로 바꾸어 사용합니다. 또한, 15절 “(그)여자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에서도 단수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단수형은 많은 번역본에서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바울이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였음을 신뢰할 필요가 있으며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복수형에서 단수형으로 바꾸어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복수형에서 단수형으로 전환된 11~15절은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특정한 한 부부에게 초점을 맞췄거나, 그렇지 않다면 둘째로 에베소 교회 안에 비슷한 문제를 가진 몇몇 부부에게 초점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4]

이 구절이 부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견해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거의 500년 전에 마틴 루터는 그의 한 설교에서 이 구절은 바울이 부부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렇게 설파했습니다. “사실은 여기에서 ‘여자’는 아내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바울이 남편을 ‘남자’라 부르므로 그는 아내를 ‘여자’라 부릅니다.” [5]

저는 디모데전서 2장 11~12절이 배움이 필요했던 에베소 교회의 한 아내에 관한 내용이라고 제안합니다. 짐작건대 그녀는 성경 말씀(창세기 2, 3장 같은)과 기독교 교리를 정확하게 배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 사람으로서 이 여인은 누군가를 가르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녀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서의 ΑΥΘΕΝΤΕΙΝ(오덴테인)

바울은 또한, 한 여자가 한 남자를(남편일 가능성이 큼) 지배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헬라어인 αὐθεντεῖν(오덴테인)은 어떤 사람 특히,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태도의 한 형태를 말합니다. (이 단어에 관한 기사를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존경받은 교부였던 크리소스톰(Chrysostom, 407년 사망)은 골로새서 3장 19절에 대한 논평에서 같은 헬라어 동사를 사용했고 남편은 그의 아내를 αὐθεντεῖ(오덴테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크리소스톰의 설교의 잘 알려진 영어 번역에서 이 헬라어는 “act the despot(폭군 행위)”으로 번역되었습니다. [6]

Aὐθεντεῖν(오덴테인)은 권위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단어의 의미와 관련이 없습니다. 고대 문헌에는 전체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사물(신이나 행성 같은)에 αὐθεντεῖν(오덴테인)이 특정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남자나 여자, 아내나 남편이 받아드릴 수 없는 강압적, 통제적, 지배적, 심지어 전제적 행동에 대해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디모데전서 2장 8~15절은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문제 행동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이며 이 구절이 사역에 대한 그의 보편적 가르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좀 더 어려워집니다.

디모데전서 2장 13~14절과 아담과 이브

“실 아담이 먼저 지으심을 받고, 그다음에 하와가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그 여자가 속고 죄에 빠진 것입니다.”(딤전 2:13~14)

계속해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13~14절에서 창세기 2~3장을 요약하여 말합니다. 그가 아담과 이브를 언급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부부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은 디모데전서 2장 13절의 시작 부분에서 영어로 번역된 “for”를 “~때문에”로 해석하며 13, 14절을 바울이 왜 한 여자가 가르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for”의 헬라어로 사용된 단어는 γάρ(가아) 이며 이것은 신약성경(영어버전)에서 일반적으로 “때문에(because)”로 번역되지 않습니다.

Bible Gateway(영어 성경 사이트)에 나온 60개의 영어 번역에서 디모데전서 2장 13절에 “때문에”가 포함된 번역본은 단지 6개뿐입니다. 보통 “때문에”로 사용하는 다른 헬라어 단어 ὅτι(호티)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이 구절에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헬라어 γάρ(가아)는 추가적인 배경 정보를 소개하기 위해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추가정보는 때로는 지난 시대 또는 구약성경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때로 γάρ(가아)가 포함된 배경 정보는 거의 괄호 속에 넣을 수 있는 부수적인 내용입니다. (여기 기사에서 γάρ(가아)의 이러한 사용에 대한 몇 가지 예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특히 이브가 아담보다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창세기 2~3장을 왜곡시킨 한 여자의 잘못된 율법의 가르침을 바로 잡기 위해 아담과 이브를 들고 나왔을 수 있습니다. 1세기와 이후 세기에 걸쳐 창세기 2~3장에 대한 몇 가지 이상한 해석이 있었습니다. [7]

바울은 13~14절에서 단순히 기록을 바로 잡았을 수 있습니다: “사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다음에 이브가 지음을 받았고, 속은 것은 아담이 아니라 이브였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2~3장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새로운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13~14절에 대해 나눌 내용이 더 있지만 15절로 넘어가겠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5절 그리고 절제함을 갖춘 거룩함(극단을 피함)

“그러나 그들이 믿음과 사랑과 절제함을 갖춘 거룩함을 지니고 살면, 그녀는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15 [8]

디모데전서 2장 15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절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여성이 자신의 남편에 대한 지배적인 행동에 대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경건함을 이유로 남편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출산을 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바울의 편지에서 에베소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금지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디모데전서 4:3).

성적 포기는 초대 교회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일찍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과 또 다른 신약성경 구절에서 성적 포기의 시작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초대 교회의 특징이었습니다. [9] 예를 들면 히브리서 저자는 “결혼은 모든 사람에게 고결하며, 잠자리(또는 부부관계)는 순결하다”(히브리서 13:4)라고 말할 필요성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순결을 지키며 끝까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성생활을 거부하고 남편을 떠나거나, 평생 처녀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기독교 여성들에 대한 초대 교회의 문서가 많이 남아있습니다(여기 참조). 일부 기독교 남성들 또한 독신 생활을 선택하였습니다. 이것은 순결문화에 대한 과장된(극단적) 형태였습니다. 충격적이게도 당시 성적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 구원과 부활로 연결된다는 신학적 오류가 있었습니다.

저는 디모데전서 2장 15절을 바울이 한 여성(혹은 여성들의 모임)에게 남편과 잠자리를 갖고 자녀를 낳더라도 그들의 구원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녀는(단수형)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복수형: 부부) 믿음과 사랑과 절제함을 갖춘 거룩함에 계속 거한다면”이라고 바울은 덧붙입니다. (각주 [8] 참조)

저는 “절제함을 갖춘 거룩함”에 대한 문구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에베소의 한 여성 또는 몇몇 여성들이 거룩함의 개념을 지나치게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10]

디모데전서 2장 11~15절에서[11] 바울이 하는 말의 배경을 암시하는 몇 가지 미미한 단서가 디모데전서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바울이 8~15절까지 남성과 여성의 문제 행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8~15절과 고린도전서 14장 26~40절, 이 두 곳에서 바울은 문제 행동에 대해 고심하고 바로잡으며 또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이 두 구절은 에베소 교회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들에서 원칙을 끌어낼 수 있고 또 끌어내야만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구절들은 바울 사역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3부에서는 디모데전서 3장과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문구와 바울이 선호하는 사역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각주

[1] 1부에서 고린도전서 14장 32절, 34절에 나오는 “복종(순종)”을 의미하는 ὑποτάσσω(후포타소)는 선지자들과 여인들이 소동이나 수치스러운 행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들이 자신의 말을 ‘통제’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디모데전서 2장 11절에서의 “순종” 또한 비슷한 의미가 있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완전한 순종으로”는 사실상 “그녀 자신을 완전히 통제함으로”의 의미가 될 수 있다. (순종에 대한 모든 글은 여기에서 참조.)

[2] 일부 신약 학자들은 사도바울이 실제 디모데전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그가 기록한 것으로 추정하며 편지에 있는 내용을 사실로 여긴다.

[3] “조용히”를 뜻하는 헬라어 “ἐν ἡσυχίᾳ(엔 헤수기아)”는 디모데전서 2장 11절의 시작 부분에 나타나며 12절의 끝에서 반복되어 하나의 단위를 형성한다. 에베소 교회 소속인 한 여자(또는 몇몇 여자들)는 말을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디모데전서 2장 11~12절의 시작과 끝인 강조하는 위치에서 “조용히(ἐν ἡσυχίᾳ, 엔 헤수기아)”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한 여자가 (절제하지 않고 쏟아내는 말로) 혼란이나 혼동을 일으키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는 일부 초기 유대인들의 글에서 “조용함 (ἡσυχίᾳ, 헤수기아)”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여기에 게시하였다.)

[4] 헬라어에서는 문장이 연결어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1절은 그렇게 시작하지 않는다. Discourse Features of the New Testament Greek(신약성경 속 헬라어 담화의 특징, Dallas: SIL International, 2000, p. 119), Stephen Levinson은 헬라어에서 ‘접속사 생략’ 기법은 일반적인 내용에서 구체적인 내용으로 옮겨질 때 사용될 수도 있다고 언급한다.

[5] 이 인용문은 1528년 2월 11일에 있었던 설교에서 발췌한 것으로 디모데전서에 대한 루터의 주석에 있다(온라인 인터넷 아키브: Internet Archive, p. 276 참조). 나는 바울이 8~15절에서 한 아내나, 아내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이 구절에 대한 루터의 주석에서 남자와 여자에 대해 말하는 거의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6] 골로새서에 대한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설교 10은 새로운 강림(New Advent) 웹사이트에 있다. 크리소스톰이 αὐθεντεῖν(오덴테인, 폭군 행위)을 사용한 더 많은 예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7] 기원전 1세기나 기원후에 무명의 작가가 ‘아담과 이브의 생애라는 글을 썼다. 이 소설은 창세기 2~3장을 크게 왜곡시켰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 소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유대인 작가 필로(Philo, 서기 50년경 사망)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 무렵에 창세기 2~3장에 대한 영지주의적 해석이 시작되었음을 본다. 이브가 아담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일부 영지주의 문서에 있다. 이러한 영지주의 문서 중 몇 가지를 여기에 인용한다.

[8] 헬라어 동사인 σωθήσεται(쏘데세타이)는 단수이며 “그녀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를 의미한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2장 15절의 헬라어 원어에는 “여자(단수)”나 “여자들(복수)”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다. “거하면(remain ,continue, abide)”을 의미하는 헬라어 동사인 μείνωσιν(메이노신)은 복수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만약 그들(부부)이 믿음과 사랑과 절제함을 갖춘 거룩함에 거하면 여자(단수)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어 성경에는 인칭에 대한 부분이 불분명하다.)

[9] 고린도전서 7장의 대부분은 당시 일부 기독교인들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독신으로 남기를 선택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배우자와 성관계를 포기하며 심지어 배우자를 떠났다는 것을 이해할 때 납득이 된다. 여기에 고린도전서 7장에 관한 내용이 더 많이 있다.

[10] 절제”를 의미하는 헬라어 “σωφροσύνη(소프로수네)”대한 사전(LSJ:고대 헬라어-영어사전) 항목이 여기에 있다.

[11] 이러한 단서에는 디모데전서 1장 7절 이하(딤전 2:13~14 참조)에 언급된 율법을 언급한 이상한 가르침과 디모데전서 4장 3절(딤전 2:15 참조)에 언급된 결혼을 금지하는 금욕적인 가르침을 포함한다.

2023년 2월 13일 Margaret Mowczko (마가렛 모우츠코)

바울의 사역 신학: 고린도전서 14:34~35
바울의 사역 신학: 디모데전서 3:2과 브리스길라
평등주의의 성경적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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